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후 14일이 경과하지 않은 자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 마라톤에서도 백신 패스가 적용되고 있다. 백신 접종 후유증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접종을 마친 덕분에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에 나와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제1회 영등포구청장배 육상 마라톤 대회 배번을 달고 안양천변을 뛰고 있는 사람은 예외없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를 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번과 기념품을 배부할 때부터 QR코드를 제시해야 하는 모습은 코로나 시대의 예고된 풍경이었다.
참가자 기준 >>>
1.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 14일이 경과한 자
2. 기념품 및 배번호 현장 배부시 체온 측정 및 백신 2차 접종 완료 후 14일 접종자 확인(1차 접종만 받은 사람은 참가 불가)
3. 참여자 전원 마스크 착용
4. 각 코스별 출발 인원 최소화
늦게 출발해도 자기 기록은 정확하게 나오니 상관없다고 했다. 러닝화에 칩을 끼우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람? 출발할 때 배번을 일일이 기록이라도 하나? 출발 및 골인 아치 아래 칩 인식 패드가 있는 이유는 뭐지?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배번 뒤쪽에 아주 가벼운 인식 칩이 붙어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칩을 달고 뛰는 것이었다. 이름이 찍힌 배번도 올해 처음이었고.
9시부터 행사가 진행되었다. 9시 30분이 출발 시각으로 공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하프 출발 신호가 있었다. 9시 15분인데. 곧 10킬로미터 출발 신호도 있었다. 결국 나는 10킬로미터 주자들보다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서. 출발 직전 러닝화 끈을 다시 풀었다 꽉 동여매기까지 했다. 늦었으니 속도를 내어야 한다는 반발 심리로 발걸음을 재빠르게 놀렸다. 숨이 차 힘들어 죽을 정도였다. 하프를 1시간 59분대에는 뛰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킬로미터당 5분 40초의 페이스가 되기를 갈망했다. 1킬로미터, 2킬로미터 표지판은 없었다. 페이스를 체크해 볼 도리가 없었다. 좀 빠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동안 워낙 운동이 부족했고, 살도 꽤 쪄서 나 자신만 빠르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서두르게 되었다. 양평교에 다다르자 3킬로미터 표지판이 불쑥 나타났다. 경과 시간은 14분 55초. 5분 이내의 페이스로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10킬로미터 주자들이 반환해 오고 있었다. 5킬로미터는 25분이 걸리지 않았다. 급수대가 왼편에 있어서 급수대에 다가가지 못했다. 급수의 고집을 부렸다간 반환해 오는 10킬로미터 주자들과 충돌할 우려가 있었다. 주최측에서 하프 주자들을 위한 급수대를 설치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한강을 만나 좌회전 두 번, 안양천 상류를 향하여 달려나가는데 급수대가 없었다. 속도를 너무 냈기 때문에 갈증이 심했다. 결국 버티다 7.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야외 수도를 찾아내 수돗물을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면서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8킬로미터 부근 목동교 쪽에 급수대가 있었다. 이미 갈증을 해소한 만큼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주로를 바꿔 컵을 잡았다. 생수가 아닌 게토레이로.
8킬로미터까지가 절정의 달리기였다. 이를테면 인터벌 훈련을 8킬로미터 내내 한 것이었다. 남은 13킬로미터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만약 달리기 훈련 중이었다면 여지없이 걸었을 것이다. 8킬로미터 인터벌이면 훈련은 충분하니 그만 걸어도 된다고 믿고. 하지만 이건 대회였다. 남은 13킬로미터를 어떻게든 달려내어야 했다. 이것은 배번을 단 정식 마라톤 대회니까. 오버페이스가 걸린 몸을 달래어 달려나가는 비법 가운데 하나는 마스크 내리기였다. KF AD 마스크라 마스크를 쓰거나 벗거나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살짝 내리면 견딜만 해졌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마스크를 다시 올리곤 했지만 나 혼자가 되면 턱까지 마스크를 끌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장딴지에 붙인 테이프는 다리 움직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너덜거렸다. 다리에 붙은 부분이 점점 줄어들더니 반환하기 전과 반환한 후 한 장씩 떨어져 모두 없어져 버렸다. 8킬로미터 이후 숨을 돌린다고 속도를 늦추긴 했어도 반환은 52분 31초였다. 그렇다고 그 페이스가 쭉 이어져 1시간 45분 02초가 될 수는 없었다. 입동이긴 했지만 기온이 20도에 육박할 만큼 높았다. 달리기 조건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한여름에 달리는 것처럼 대부분 반팔이나 민소매를 착용하고 있었다. 동시 출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페이스메이커로 삼을만한 주자는 없었다. 달리다 보면 나 혼자 훈련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지난해 11월 1시간 54분대로 달리고, 1년만에 하프 출전이고, 지난 여름 몸을 방치하고 백신 주사 후유증까지 겪었기 때문에 내 목표는 처음부터 2시간 이내 완주였다.
몹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기록과 싸우지는 않았다. 주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오프라인 마라톤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강의 새로운 풍광이라고 할 월드컵대교가 완공되어 있었다. 경이로운 기울기의 주탑을 자랑하는 월드컵대교를 이제야 확인한 것이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군집을 꾸린 코스모스의 다양한 색채에 취해보기도 했다. 먼지 풀풀 날리던 영롱이 구장이 인조잔디로 바뀌고 거기서 대회에 참가중인 축구 동호인들의 모습에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지친 몸을 달래고 달래어 16.1킬로미터까지 왔다. 5킬로미터가 남았다면 질주하던 스타일이 있었지만 그냥 자세에 신경쓰면서 팔놀림만 조금 부지런하게 했다. 힘들면 자기도 모르게 상체가 숙여지기 마련이라 눈을 들어 전방을 살펴서 몸을 세웠다. 코 앞에 신정교가 나타나 다 왔구나 싶었는데 목동교였다. 그 다음 다리까지 가야 했다. 드디어 신정교구나 했는데 이번엔 오목교였다. 사람의 진을 다 뺀 뒤에야 신정교는 가까워졌다. 10.55킬로미터에서 16.1킬로미터까지 내내 속도를 늦추어가며 지친 몸을 추스렸기 때문에 1시간 44분대는 될 수 없었다. 속도를 늦추기를 거듭한 결과 후반이 전반보다 늦어진 하프 마라톤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다만 더 늦어질 수 있었던 기록을 마지막 5킬로미터에서 24분대로 달리며 걷고 있는 주자를 독려해가며 애쓴 결과 1시간 45분대는 달성했다.
1:45:53
골인하기가 무섭게 완주 기록증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希洙형님 옆에 섰다. 나보다 2분 쯤 빨리 골인한 형님은 당초 계획이 1시간 49분대였기 때문에 매우 고무된 느낌이었다. 마라톤 클럽의 또래 그룹들이 당신이 달려봐야 1시간 50분일 것이라고 약을 올렸기 때문에 그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었다. 나 역시 성취감이 남달랐다. 고난의 순간을 이겨내려 애쓰며 몸을 끌고 가는 것이 마라톤의 매력일 수밖에 없었다. 기록이야 어찌 되었든 정해진 거리, 자신이 달리고 말겠다고 각오한 거리를 기어이 다 채운 뒤 완주 메달을 목에 거는 이 즐거움을 무엇과 견줄 것인가? 그게 풀코스가 되었든 5킬로미터가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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