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풀코스를 완주하고 탈의실 앞에서 4시간 페이스메이커 남수님을 만났다. 남수님은 내 등을 살짝 때렸다. (가벼운 등짝 스매싱)
-도대체 뭐하는 거야? 4시간이 넘게 걸리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냥 이게 제 수준이예요.
출발할 때부터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피로 누적, 부상 여파, 체중 증가에 더위까지 기승을 부렸다. 출발 전 만난 로운리맨님은 지난번 내 속도로 볼 때 3시간 30분대로 들어갈 것 같다고 했지만 출발할 때부터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때마침 70대의 남수님이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맡고 계셔서 함께 달렸다. 거기에 새벽 2시 열차로 서울에 올라왔다는 제비한스님도 나란히 달렸다. 거리 표지판을 만날 때마다 시간이 더 걸렸고 덜 걸렸고를 거듭 언급하니 남수님이 지금 페메 페이스 체크하는 거냐고 물었다. 아니요, 예전에 3시간 59분대 페이스를 맞추어 달리던 일이 자주 있어 아직도 그 페이스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요.
2킬로미터 쯤 달려 보니 일주일 전 10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난 땀이 벌써 나고 있었다. 달리기하기 버거울 만큼 더운 날씨였다. 3시간 39분이니, 3시간 44분이니 하는 욕심을 버리고 3시간 59분대에 맞추기로 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는 것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급수대를 지날 때 가끔 뒤떨어지기도 했지만 금방 따라잡았다. 강변북로 아래의 그늘을 달릴 때에는 시원했다. 그늘 구간이 많은 공원사랑마라톤 코스가 왜 여름에 좋은 것인지 또다시 느꼈다. 1시간 미리 출발한 태현님을 비롯한 칠마회 주자들을 만나 인사를 드렸다. 전마협 대회에서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위한 배려로 일찍 출발할 기회를 주는데 칠마회에 들어가기에는 젊은 수원상현님도 뵐 수 있었다.
뚝섬 코스는 여의나루 코스보다 담배 냄새를 별로 맡지 않는 구간인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암사대교 아래 노점상이 생겨서 거기 옹기종기 모여 담배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매연지대였다. 이 암사대교를 지나기 전에 풀코스 선두주자를 만났다. 심진석님이었다. 보통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동시에 출발하면 하프코스 선두 주자가 풀코스 주자를 앞서기 마련인데 풀코스 주자인 심진석님이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풀코스 2등은 함찬일님이었다. 이 코스가 2회전이니 함께 달리는 분들이 2회전 때에는 함찬일님이 역전할 거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함찬일님이 1등, 심진석님이 2등. 이 두 분만 이 대회 서브 3 주자였다. 3등은 3시간 10분대였으니.)
하프에 참가한 상기님, 전날 축구장에서 만난 우영님, 6월 최고 속도로 달리는 로운리맨님을 만나 응원을 보내었다. 풀코스 주자인 고운인선님, 인천연형님, 헬스지노님에게도 인사를 건네었다.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주고 4시간 페메를 10여 미터 뒤에서 따라갔다. 4시간 페메 남수님은 앞서 달리던 김범연 페메와 보조를 나란히 하였다. 10시를 넘어가면서 매우 더워졌지만 한여름에 태어난 나는 잘 견디어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1회전을 2시간 이내로만 끝낸다면 서브 4 완주는 무난할 것이라고 믿었다. 은근 슬쩍 밀고 나오는 햄스트링 통증이 문제인데 속도를 늦추고 에너지를 아끼는 만큼 후반 2회전 때에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었다. 1회전을 1시간 59분에 하고, 2회전을 1시간 40분에 하면 3시간 39분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 그렇게까지는 못되더라도 2회전을 1시간 50분에 하면 3시간 49분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 이런 식으로 여유넘치는 태도로 레이스에 임했다. 1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현준님이 바리케이드를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화장실 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조금만 더 가서 제대로 된 화장실 들르세요. 19킬로미터를 조금 넘으면 만나는 화장실을 안내하였다. 1회전이 끝나갈 무렵 광배님이 물통을 들고 걸어서 오고 있었다. 초반에 기세좋게 달렸던 YJ님도 걸어서 오고 있었다. 더울 때 보면 마라톤 주자들이 걷는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던 사실을 기억했다. 추울 때는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더위는 주자를 걷게 만들었다. 하지만 에너지 소모를 줄인 만큼 내게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었다.
1회전을 2시간 이내로 마치면서 꿀물을 마시고 2회전에 나섰다. 몇 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인천연형님, YJ님을 제쳤다. 건너편에서 오는 인천고 길석님이 내게 42등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대회는 풀코스 100위까지 트로피를 받을 수 있으니 지금부터 포기하지 않고 완주만 한다면 50위 이내의 트로피를 챙길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페이스가 빨라지고 있었다. 뚝섬 코스에서 2회전 초반에는 늘 빨라졌던 그대로였다. 25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4시간 페메 그룹 앞으로 치고 나가게 되었다. 이 빨라진 페이스는 골인할 때까지 쭉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1회전할 때와는 다른 기온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함찬일님이 1등으로 오고 있었다. 예상대로 역전했구나. 역전 주자에게 큰 힘이 될만한 응원을 보내었다. 뒤에 아예 아무도 안 보여요. 몇 년 전 찬일님이 내게 달리면서 무어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알아듣지 못했고, 나중에 뭐라고 물었으냐고 알아보았더니 2위 주자가 얼마나 뒤에서 쫓아오고 있느냐고 물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 때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묻기도 전에 내가 답을 한 것이었다. 제법 달린 후에야 2위로 내려간 진석님이 오고 있었다.
27킬로미터를 넘을 무렵 따라올 사람이 없는데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꽤 속도를 올린 것 같은데 누가 따라온단 말이야? 잠시 후 남수님이 페메 그룹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뒤에서 뛰던 또다른 페메 범연님도 내 앞으로 나아갔다. 건달님 대단하세요 하면서...... 이건 뭘까? 내가 빠르게 달린 것이 아니었나? 잠시 빨리 달리기는 했을 것이다. 점점 더워지고 햄스트링에 통증도 느껴지고 몸도 피곤한데 그걸 이겨내기 위하여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을 빨리 달린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같은 운동을 하면서 더 힘을 들이게 되는데 속도는 느려진다. 결국 이런 것이 여름의 달리기가 아닐까? 여기서 전의를 상실했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에는 내 몸은 너무 무거웠다. 오늘 무리하여 더 큰 부상이 온다면 달리지 않느니 못할 것이었다. 속도가 줄어드니 인천연형님이 내 앞으로 나왔다. 4시간 페메와는 50미터 이상 거리가 벌어졌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니고...... 서브 4는? 서브 4를 못하면 또 어떤가? 아쉽기는 할텐데 상관없다. 꼭 그런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나? 사람이 늘 같은 페이스로 달릴 수는 없는 법인데. 28킬로미터부터 38킬로미터까지는 조깅나온 것보다 못한 수준으로 달렸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달렸다. 달리기와 걷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준이랄까? 그 바람에 여러 주자들이 나를 제치고 나갔다. 오랜만에 대회장에 나온 인천고 기옥님이 나에게 말없이 손가락 다섯 개를 연달아 펴서 보이셨는데 내가 55등으로 달리고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42등에서 55등으로 많이 떨어졌다. 급수대를 만나면 생수, 게토레이(또는 포카리스웨트), 콜라 연타를 마셨다. 초코파이는 녹아내리고 있어 바나나를 먹었다. 31.6킬로미터에서 반환할 때는 타우린팩을 받았는데 바로 먹었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건너편에서 오시던 은수님이 나를 보고 캥거루 주머니를 앞으로 돌렸다. 대추 캔디를 꺼내어 주셨다. 이때부터 폭풍 질주를 하면 가볍게 서브 4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건너편에서 걸어서 오는 주자들에게는 걸어도 힘든데 뛰어야 하네요라고 말을 건네었다. 잠시 만난 주자들은 다들 더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몇 달 동안 강한 달리기를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풀코스를 준비하면서 인터벌 훈련을 하기 마련인데 최근에는 부상 우려로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달리기를 못하게 되어 버렸다. 오늘의 페이스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파워젤을 먹고 각종 음료수를 마신 것도 모자라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자원봉사 나온 학생이 물 병 주로에 버리시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끝까지 들고 갈 거예요. 그렇게 말했지만 좀 지나서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골인할 때까지 물병을 들고 가게 되었다. 몇 백 미터를 이동하기도 전에 입이 바짝바짝 말라서 입을 적셔주면서 달려야 했다. 물병을 버릴 수가 없었다. 땀을 얼마나 흘리는지 굳이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었다. 너무 천천히 이동한 결과 38킬로미터부터는 회복이 되었다. 이미 골인했을 시각에 그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은 문제였지만. 어쨌든 38킬로미터 지점부터는 평상시 대회 나왔을 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풀코스 구간 중 마지막 4킬로미터가 가장 빠른 순간이었다. 4시간 페메와 함께 간 줄 알았던 제비한스님이 몹시 지친 듯 걷다 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때는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5분 10초로 달렸고, 여기서 속도를 올린 덕분에 여자 1등을 제쳤다.
04:16:36.96
일주일 전 3킬로미터 이상 더 달린 기록과 큰 차이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뛰고도 34위 트로피를 받았다. 홈페이지에는 33위로 올라갔는데 아마 트로피를 지급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 앞 등수가 빠진 듯 싶다. (나중에 다시 32위로 올라갔다.)
다들 기록이 엉망이었다. 4시간 페메보다 훨씬 앞에 있었던 고운인선님은 4시간 12분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 분은 내게 추월당할 줄 알았다고 했는데 먼저 들어와 의외라고 했다. 4시간 초반에는 골인이 가능할 것 같았던 인천연형님도 4시간 13분대였다. 초반에 4시간 페메 그룹에 잠시 들었던 인천고 길석님, 춘효님은 다들 4시간 45분을 넘겼다. 부상 때문에 참으로 오랜만에 달린 기옥님은 5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영하 20도의 환경에서 일하는데다 체격이 커서 더울 때는 무척 힘들어 하는 헬스지노님은 서브 4로 선전했다. (출발 전에 내 부상 사실을 알고 근육 강화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셨던 헬스지노님)
기온의 차이를 감안하고라도 정확히 1년 전 같은 코스에서 3시간 32분대로 달려 6위를 했던 내가 40분 이상 늦어졌다. 6월에 하프를 1시간 33분대로 달린 일까지 있던 내가 이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내 수준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수준이 3년 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른 대회에서 만회했으면 하는 마음은 절실하지만 속도 훈련을 할 수 없는데다 훈련량을 늘릴 수도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철저하게 바닥을 쳐 보아야 하리라. 7월에 풀코스 5회 달리기를 한번 더 해 보고 싶지만 아프지 않아야 가능한 것이니 지금 현재로서는 그냥 전의상실이다.
부끄럽지만 34위 트로피를.... 하지만 나중에 32위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트로피를 바꾸어 올 수도 없고....
5천원을 내면 이름과 기록을 새길 수 있다고 하는데....
뭘 잘 했다고 이름과 기록을 새기겠는가?
전국마라톤협회 공식 지정 크림을 기념품으로 선택했다. 만원을 더 내면 이 기념품을 받을 수 있으니 기념품을 받는 것으로.....
좀 많이 떨어지는 기록이지만 일주일 전 4시간 28분도 해 보았으니 그다지 생소한 느낌은 없었다. 좌절감도 별로 없었다.
1. 대회요강
2. 참가종목
◈ vip회원분들중 기념품이 필요하신분은 총 참가금에15,000원이 할인된 금액을 입금해주셔야합니다 3. 시상내역 5km, 10Km, Half, Full (단, 등록된선수 및 현장접수자 제외 )
◈단 5km 종목 순위는 건타임으로 이루어집니다. ◈엘리트선수는 선수해지후 4년이 지난 후 입상 가능 (단체대항전, 개인시상 등 모든시상에서 제외) ◈정해진 종목별 출발시간 이전에 출발하거나 10분이 지난 후 출발하는 분들은 시상에서 제외됩니다
◈ 대회당일 커플런 출전선수는 신분증 지참 후 출발전에 대회안내에서 본인확인을 해야합니다. (미참석시 커플런 시상에서 실격) ◈ 트로피는 남자, 여자 각 각 증정됩니다. ◈ 사전 신청팀(참가신청 후 커플런 팀원명단을 게시판신청)에 한하며 별도의 배번호 부여 ◈ 2인 1조 골인시간을 합산하여 순위 결정 ◈ 마감일 이전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마감일이 지난 후에는 신청/변경이 절대 불가합니다. ◈총 참가팀이10팀 미만일 경우 커플런은 자동 취소됩니다. ◈ 커플런이 진행될 경우 커플런 신청 후 임의로 개인전 변경은 불가하며 반드시 사무국으로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 커플런이 진행될 경우 커플런 신청 후 사무국에 고지 없이 개인전으로 출전하실 경우 실격 처리됩니다. ※ 이번 대회는 개인시상과 커플런은 중복시상 되지 않습니다※ 5. 접수안내
※각 대회별 환불처리는 접수마감 후 10日이내에 처리완료 됩니다. |
2회전은 견디기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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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국마라톤협회 사무국입니다. 2019 전마협 카리수 한강 마라톤대회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
본 대회의 개인 입상자를 안내합니다. Full은 모두 건타임, Half, 10km의 1-3위, 5km 1-5위까지는 건타임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외 시상은 모두 넷타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입상정보가 6월 11일 수정되었습니다. (Half 여자부 8위, Full 남자부 17, 72, 84위 입상제외) 트로피 교환을 원하실 경우 사무국으로 연락부탁드립니다. 불편을 드리게 되어 양해구합니다.
* 건타임 (Gun Time) :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심판 규정, 들어온 순, 심판진 시계, 공식 출발 총소리부터 골인까지의 기록 * 넷타임 (Net Time) : 기록계측용 칩(chip)에 의존한 개인기록, 기록증에 인쇄된 기록, 각자 출발선을 지나간 시점부터 골인까지의 기록
시상에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으실 경우 사무국으로 전화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입상자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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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위까지 시상인데 83위까지만 트로피만 지급되었다. 현장접수과 조기 출발만 아니면 완주한 사람은 누구나 트로피를 받았다는 뜻이다.
식사를 함께 하시기로 한 분이 축구선수 아들과 함께 대회장으로 왔다. 내 완주 기록이 4시간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도 무감했다. 바지락 칼국수를 함께 잘 먹었다.
삼색 바지락 칼국수 3인분
해물전도 맛있게.....
잘 달리지도 못하면서 먹는 것은 최고 수준이다.
대회 당일 새벽이 다 되도록 밥을 짓고....
돼지고기 찌개도 만들고
청경채 볶음도 만들고
콩나물무침도 만들고
가지볶음도 만들고
가지무침도 만들고....
부추김치도 만들고.....
오이무침도 만들었다.
아무리 빨리 해도 새벽이 되어 버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마당에 잘 달릴 수는 더욱 더 없었다. (핑계거리는 최고다. 작년에 이렇게 요리했어도 이 지경으로 달리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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